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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소개

김옥수 도미니코 신부의 성화 타일

김옥수 도미니코(金玉洙) 신부와 성화 타일

김옥수 도미니코 신부는 1981년 12월 12일 사제 서품을 받고, 로마에 유학을 했다. 부산 다대본당 주임으로 재직하던 시기(2002~2006)에 성당을 신축하면서 독학으로 터득한 양초조각 경험을 살려 성화타일조각을 시작했다. 타일에 조각을 하여 그림을 그린 다음 안료를 넣고 도자기로 구워내는 작업이었다. 흙(타일)이 사제의 손에서 쇠(조각칼)와 물(안료)과 불(가마)을 만나 오묘한 색감들의 조화로 어우러지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2008년 ‘조각 타일의 제조방법’으로 특허를 등록했고, 여러 차례의 전시회와 전국의 20여 곳 이상의 성당과 성지에 성화 타일 작품들을 영구 설치했다.

로베르 신부와 계산 성당

로베르(Achille Paul Robert, 金保祿, 1853~1922) 신부는 1885년 12월 신나무골에 정착했다. 로베르 신부는 1887년 11월 중순 새방골(송골)로 들어왔고, 1891년 12월 계산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계산동에 1896년 5월 31일부터 십자가형 한옥 성당을 짓기 시작해 1898년 9월 1일 성당을 완공했고, 12월 25일 비에모 신부와 함께 성당을 축성했다. 한옥 성당은 1901년 2월 4일 밤 8시경 지진과 화재로 전소됐다. 로베르 신부는 프와넬 신부의 설계도를 따라 새롭게 고딕식 성당을 지었고, 뮈텔 주교가 1903년 11월 1일 성당을 축성했다. 대구대목구가 1911년 4월 8일 설정되고, 드망즈 주교는 성당 증축 공사를 1918년 1월 15일부터 시작해 1919년 5월 11일 축성했다.

보두네 신부와 전동 성당

보두네(Francois Xavier Baudounet, 尹沙勿, 1859~1915) 신부는 1887년 5월경(3월~6월) 여진이(海平)에 머물다가 로베르 신부가 1887년 11월 중순 새방골로 떠나자 신나무골로 왔다. 보두네 신부는 신나무골에서 18개월 정도 경상도 북부와 전라도 일부를 사목을 하다가 1889년 3월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大成洞)에 정착했다. 1908년 5월 5일 프와넬 신부의 설계도를 따라 전동(殿洞)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성당 외부는 완성됐지만, 내부가 덜 갖추어진 1915년 5월 27일 보두네 신부는 미사를 드리다 쓰러져 선종했다. 드망즈 주교가 1925년 8월 24일 종을 축성했고, 1931년 6월 18일 성당을 축성했다.

죠조 신부와 초량 성당

죠조(Moyse Jozeau, 趙得夏, 1866~1894) 신부는 1889년 3월부터 신나무골에 상주했다. 1년 정도 신나무골에서 사목을 했던 죠조 신부는 1890년 초 부산 영도[絶影島] 조내기에 정착해 초가 한 채를 지어 복음을 전파했다. 1890년 가을 초량(草梁)에 대지를 구입해 1891년 7월경 성당을 이전했다. 죠조 신부는 1893년 부산을 떠났고, 성당은 1916년 5월 말 범일동으로 이전했다. 범일 성당은 1936년 9월 13일 축성됐다.

파이야스 신부와 가실 성당

파이야스(Camillus Cyprien Pailhasse, 河敬朝, 1868~1903) 신부는 1894년 4월 14일 신나무골로 임명을 받았고, 집수리가 끝난 7월 19일부터 신나무골에 거주했다. 파이야스 신부는 1895년 2월 8일부터 부지 구입을 준비해 6월 11일 가실(佳室) 성당을 설립했다. 1년 정도 신나무골에서 사목을 했던 파이야스 신부는 1895년 6월 28일 가실의 19칸 한옥을 매입해 1895년 9월 2일 거처를 옮겼고, 신나무골은 공소가 됐다. 가실 성당 5대 투르뇌 신부가 프와넬 신부의 설계에 따라 성당을 건축했고, 드망즈 주교가 1925년 9월 28일 축성했다.

성당 설립일과 축성일
· “성당을 축성했습니다.”(1898년 12월 25일)
· “화재로 성당이 소실됐습니다.”(1901년 2월 4일)
·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
· “하느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1876년 12월 23일)
· “황해도 장연에 첫발을 내렸습니다.”(1877년 9월 8일) (리델 주교, 로베르 신부, 두세 신부)
·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합니다.”
계산동에서의 사목
· “추방되었다가 대구에 입성했습니다.”(1891년 4월 30일)
·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1922년 1월 2일)
· “새로이 고딕 성당을 축성했습니다.”(1903년 11월 1일)